[중앙일보] "안마업이 무너지면 학교에서 배울 이유가 없습니다."
17일 서울 마포대교 남단의 여의도 한강둔치. 헌법재판소의 안마사 자격조항 위헌 결정에 항의해 농성을 벌이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300여 명 사이에 '생존권 보장'이라 적힌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른 서울맹학교 학생들이 눈에 띈다. 5월 헌재 결정 이후 전국 12개 맹학교는 동맹휴업을 하고 학생과 학부모들이 길거리로 나서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다.
◆ 수업의 70%가 안마 관련 교육=그동안 맹학교는 사실상 '안마사 양성 학교'로 운영돼 왔다. 고등부 수업의 절반 이상이 안마와 관련된 것이다. 고교 2학년의 경우 일주일 35시간 중 안마실습(5시간)과 침구실습(4시간), 한방(3시간) 등 안마 관련 교육이 23시간을 차지한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안마사를 희망한 학생은 거의 없다. 17세 때 녹내장으로 실명을 한 서울맹학교 고등부 3학년 오경훈(22)씨는 "안마 말고 다른 직종은 맹학교에서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다른 직종이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 그걸 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학년인 선명지(17)양도 "누가 안마를 좋아서 하겠냐"며 "어렸을 땐 의사.변호사 등 각자 꿈이 있지만 커 가면서 결국 안마가 최선이라고 여기게 된다"고 했다.
◆ 대안은 없나=이번 헌재 결정으로 맹학교는 당장 교육과정을 바꿔야 할 판이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다. 서울맹학교 김인희 교사는 "다른 진로 지도를 하고 싶어도 일반 기업에서 시각장애인을 받아주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막막하다"며 "취업이 가능하고 생계가 보장되는 직업이 안마 말고 뭐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고혜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나서서 시각장애인에 적합한 직종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반 학생과 통합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한 여건도 갖춰져야 한다. 시각장애인의 70% 정도가 일반학교에 다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이 맹학교를 택한다. 공주대 한성희(특수교육학) 교수는 "미국에선 단 한 명의 시각장애인 학생을 위해 일반학교에서 시설을 갖추고 각종 보조장치를 지원한다"고 말했다.
한애란.김호정 기자